

“세책방 주인이 말하기를 낭자가 장안에 떠도는 염정소설은 모조리 읽은 사람이라 하더이다. 그런데 낭자가 세책방에… 들릴 새가 없었다?” “그 주인장이 농을 친 모양입니다.” “양반집 규수가 주학을 공부하고 노자를 공부하며, 염정소설을 읽는다라….” “…….” “염정소설이야… 여인네라면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았다 하니 둘째 치고, 주학과 노자는 거리가 먼 개념들 아니오?” “…….” “실학과 무위를 어찌 함께 갈망하시오?” 만남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의 방향성에 잔뜩 긴장하고 지호를 만나러 온 희진과는 달리 지호는 희진을 약 올리기로 결심한 듯했다. *** “이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서 책이라니… 어울리지 않습니다.” “내 말하지 않았소?” “무엇을요?” “나는 꽃을 싫어하오.” 그러했다. 지호가 희진의 집에 두 번째로 찾아왔을 때, 희진에게는 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놓고 자신은 안 좋아한다고 했었다. 희진은 지호의 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. “그런데 꽃도 싫어하는 분이 이곳에 오셨습니까?” “그러니 좋아하는 낭자와 오지 않았소?” “아….” *** “사내들은 모두 도련님 같으십니까?” “나와 같다는 게 어떤 거요?” “…….” “낭자?” “도련님을 보고 있자면, 슬픈 것도 아닌데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.” 희진의 목소리가 다시금 파르르 떨렸다. 거세게 뛰어대는 심장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. 희진의 아픔을 안다는 듯이 지호의 고요한 목소리가 희진의 귓가를 감싸 안았다. “그것은 낭자도 마찬가지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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